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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池淡)정홍자

선거법 위반 재판 그 이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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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위반 재판 그 이후

세상과 연애하다 2008. 8. 2. 12:43

고통은 행복의 씨앗이야

사전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 상실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되돌아보면 그 시간을 어찌 보냈는지 아찔하다.

재판 과정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사건을 엮어 가는 모양새가 너무 엉성하고 코메디였다. 재판장에 앉아 있는 나는 그 속에 주인공이었다. 지역구에서 재선씩이나 했으면서 대사 한마디 없는 주인공이었다. 광역의원이나 하면서 어떻게 그리 철저하게 바보 역을 잘 해냈는지.

2심을 앞두고 모든 사람들은 꼭 살아 날 거라 믿었다. 너무 억울하게 되었다고 혀를 찼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의미가 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는 기도가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하느님 보시기에 더 이상 이쁜 모습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신분을 걷어 가시라고. 정말 그랬다. 정의가 살아 있다고 굳게 믿은 재판과정과, 이웃과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동료 속에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너무 컸다. 아니 실망이 너무 컷다. 아름답다고 믿었던 정치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신분이라면 차라리 벗어 버리고 싶었다.

지금도 가끔은 재판 과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에서 묻어 둔 기억들이 되살아 나는 순간 억울한 생각에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그 시간들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웠던지.
겨울 새벽기온이 살이 에이듯 차디찬 바람을 안고 안양천을 뛰었다. 밤새 뒤척이다 말고 가슴에서 불이 타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뛰쳐나온 길이 안양천이었다. 찬공기를 가르며 달렸지만 시원하지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안양천에 내 얼굴을 비쳐보았다. 어둑어둑한 물가는 어렴풋하게 내 모습을 그려냈다.

두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얼굴을 타고 거치지 않고 그냥 뚝뚝 냇물로 떨어졌다.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맺히고 입에서는 화산 같은 불이 뿜어져 나옴을 느꼈다. 뜨거운 불덩이는 아무리 토해내도 끝도 없었다. 온 몸에서 진한 땀이 묻어나왔다. 그걸 바로 고통이라 하는가 보다.

난 고통을 잘 참아냈다. 아니 값지게 바꾸어 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드린 고통이지만 나를 변화 시켰다.

혹여, 사건이나 재판에 대해 주절주절 아무에게나 말하게 될까봐 긴장하고 살았다. 입을 악물고 단단한 자물쇠를 잠궈 두려고 노력했다. 가끔 푼수처럼 나도 모르게 말하고 또 후회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난 참 행복하다. 고통을 참아 낸 값진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현실에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아는 삶을 찾았다.

고통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삶 전반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휴식을 통해 여유를 찾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 내 삶은 미래와 과거만 존재했다. 미래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오늘을 참고 살아야 했다. 버겁고 힘든 오늘은 미래를 위해 참아야 했다. 과거의 미래가 오늘의 내 삶인데 늘 내일과 미래를 생각했다. 여유 없이 뛰어야 했다. 쉬어 갈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난 오늘 고통이란 내 삶 속에서 여유를 찾았다. 행복을 찾았다. 사랑을 찾았다.
그저 행복하다. 의원직을 잃었어도 행복하다. 재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도 행복하다. 일자리가 없어 1년을 놀았어도 행복하다. 눈을 뜨는 순간 새로운 날이 밝았음에 행복하고 새로운 시간이 주어졌음에 행복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이 순간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예전에 내 삶은 왜 그리 버거웠는지 모르겠다. 온통 힘든 과거로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과거에도 이리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왜 오늘을 살지 못했을까? 현실을 살지 못하고 미래와 과거로 살았을까?

옹졸하던 나를 깨뜨리려니 그리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려니 그리 고통스러웠던 모양이다.

불행한 일도 고통스런 일도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억울한 일도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왜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을까?


고통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고통의 경계를 넘어 보니 값진 인생의 보물이 있다는 걸 누가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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