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오바마 스피치의 비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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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흑인 케네디’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다. 무명에 가깝던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 우뚝 선 비결이 명연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받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그의 연설은 마력을 가진 듯 청중을 사로잡았다. 쉽고 간결하지만 명확한 메시지가 담긴 그의 연설은 정치에 무관심하던 이들까지 투표장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다면 그의 연설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있을까. ‘연설의 표준’이라고 불리는 오바마식 연설의 7가지 비밀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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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연설에도 리듬을 타라 더블유인사이츠(w-insights)의 김미경 원장은 오바마를 지휘자로 비유한다. 아트 스피치적 관점에서 볼 때 오바마의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은 마치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교향곡을 연상시켰다는 것. 김 원장의 설명이다. “도입부에서 미국인의 승리를 조용히 축하하다가 진솔하게 감사의 뜻을 펼치죠.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 오늘의 승리가 의미하는 바를 세계적인 이슈를 들어 차분히 설명합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다소 힘을 주어 말하면서 리듬을 타기 시작합니다. 물론 제스처도 청중을 지휘하듯 조금씩 커집니다. 이어 연설의 클라이맥스에서 방점을 찍더니 다시 서정적인 톤으로 사람들을 몰입시킵니다. 그의 연설이 드라마틱한 이유입니다.” 연설 마지막에 “모든 청중에게 감사를 드리며 신의 은총을 빈다”고 말할 때는 장엄한 연주가 끝난 뒤였다. 그는 리듬을 타듯 연설에도 강약약, 세기를 달리 하면서 청중을 휘어잡았다. 마치 지휘자가 되어 청중의 시선과 관심을 자유롭게 연주한 것과 같았다는 것이다.
2. 쉽고 간단한 언어를 반복적으로 활용하라 오바마는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연설만큼은 단순 명쾌하다. 무엇보다 쉬운 문구를 자주 반복함으로써 청중의 집중도를 높였다. 문장을 길게 끌기보다 “그것이 이유입니다” “이렇게 답했습니다”와 같은 명료한 문구를 먼저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풀어갔다. 쉬운 문구의 반복은 청중의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감정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김 원장은 “청중 가운데는 연설자의 정치적인 의도를 100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쉽고 단순한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청중은 스스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간단한 문구를 통해 연설자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문장이 청중에겐 공감지수를 높이는 쉼표가 된다는 얘기다.
3. 일화를 인용해 친근하게 다가가라 오바마 당선자는 연설문에 일화를 자주 삽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106세 흑인 쿠퍼 할머니의 인생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조명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의 역사를 지루하게 나열하지 않았다. 대신 평범한 쿠퍼 할머니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인종 갈등, 경제 공황, 제국주의, 공산주의 등 미국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오바마 당선자가 다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룩하자고 호소했을 때 청중은 모두 쿠퍼 할머니가 된 듯 감동에 휩싸였다. 그가 연설문에 자신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이나 부모 이야기를 자주 삽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면 “겨우 세 시간을 자고 야간 근무를 시작하는 젊은 학생의 얼굴에서 혼자 힘으로 저와 제 여동생을 키운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식량 배급표에 생계를 의존해야 했지만,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당신의 자녀를 최고 학교에 보낼 수 있었습니다”와 같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식이다. 이런 평범한 일화는 사람들에게 그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며, 자신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게 했다.
4. 청중에게 희망을 선물하라 오바마 당선자의 연설에는 언제나 ‘희망’이 담겨 있다. 암울한 경제 상황 속에서 그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꿈을 갖자고 말했다. 45년 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로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처럼,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을 적절히 섞어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최진 소장은 “오바마 당선자는 ‘변화(change)’와 ‘희망(hope)’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21세기 미국인들이 바라는 욕구를 간파해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희망찬 감정이입은 청중 스스로 ‘CHANGE WE NEED’란 팻말을 들게 했다. 특히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Yes, we can”이란 문구를 7번이나 반복한 것도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기 위함이었다. 연설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Yes, we can”을 구호처럼 따라 했고, 그가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를 믿었다.
5. 청중과 충분히 교감하라 최진 소장은 오바마 당선자야말로 ‘감화적 리더십’이 뛰어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머리보다 가슴으로 연설한 사람입니다. 힘든 어린 시절을 헤치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삶의 응축된 메시지를 진솔하게 전달한 거죠. 힐러리나 매케인도 연설에 뛰어났지만 청중의 가슴을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감화적 리더십이 발휘된 대상은 여성을 비롯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인디언 등 사회적 약자였다. 그는 연설을 통해 “부자와 빈자,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흑인, 백인, 히스패닉, 아시아인, 인디언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미합중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흑인과 백인의 피를 절반씩 나눠 받은 그는 누구보다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의 연설은 약자들과 충분히 교감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실제로 그는 시민들의 질문을 받는 자리에서 한 청년이 한국 출신임을 밝히자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 박수를 받았다.
6. 몸짓으로도 연설하라 오바마는 연설할 때 연단을 100퍼센트 활용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단상에 가만히 서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김미경 원장은 “오바마는 연설할 때 단상을 최대한 활용합니다. 고개만 살짝 돌리는 것이 아니라 어깨와 발을 완전히 돌려 청중을 돌아보죠. 좌석 양 끝에 있는 청중까지 포용하면서 연설을 하는 겁니다. 특히 낮은 단상을 이용해 상반신이 노출되도록 하는데, 이는 손짓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이죠. 연단을 자유롭게 횡보하기도 하고 두 손을 포옹하듯 벌리면서 자신을 보여준다는 제스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손끝을 하나로 모아 하늘을 향하면서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줍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진 소장은 청중과 눈을 맞추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는 “오바마 당선자는 연설을 할 때 청중의 눈을 또렷하게 바라봅니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죠. 그리고 가끔씩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듯 시선을 돌립니다.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는 뜻을 보여주는 겁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눈빛 하나, 손동작 하나도 모두 연설의 일부분으로 여겼던 것이다.
7. 진실한 마음으로 호소하라 오바마 당선자의 연설을 접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것이 ‘그의 연설에는 진실성이 듬뿍 묻어난다’는 점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오바마 연설의 핵심은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과 자신이 믿는 철학이 일치한다는 겁니다. 미국인들은 그가 말하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며 진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정치 철학을 삶의 궤적이 낱낱이 증명했기 때문이죠. 같은 연설을 힐러리나 매케인이 했다면 미국인들이 지금처럼 열광했을까요? 당연히 아닐 겁니다. 오바마였기에 가능했던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부모의 이혼과 불우한 청소년기를 극복하고 명문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거부했다. 시민운동가로, 지역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서민들 곁에서 자신만의 정치 철학을 만들었다. 이 삶의 과정은 미국인들에게 그의 연설이 사실이며 진실하다고 믿게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오바마의 진실한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 말리아와 샤샤 두 딸에게 백악관의 ‘퍼스트 독’으로 유기견 보호소의 잡종 개를 선택하게 하겠다고 말한 것. 그의 진실한 인생 철학이야말로 명연설을 탄생시킨 밑바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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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박지현(자유기고가) 사진 제공: 연합 도움말: 김미경 원장(더블유인사이츠)·최진 소장(대통령리더십연구소)·황상민 교수(연세대학교 심리학과)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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