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식남’과 ‘건어물녀’라는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건너온 이 말은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는 남녀를 지칭한다. 연애와 결혼에 관심이 없으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아예 관심 밖이다. 이런 말이 회자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출산율이 그 만큼 낮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통계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合計出産率,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21명(이하 2009년 추정치)으로 전 세계 225개국 중에 저출산율 6위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저출산율 1위 국가는 마카오로서 합계출산율이 0.91명으로 추정되고,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아프리카의 니제르(Niger)로 7.75명이 예상되고 있다.
어쩌다가 일본과 우리나라가 저출산율 상위 국가가 되었는가? 일본에서는 ‘과열된 경쟁’과 ‘경제위기’를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고 한다. 과열된 경쟁은 모르겠지만 경제위기가 저출산율을 가져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위기가 발생함으로써 미래가 불안한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결혼할 엄두를 내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미루거나 한두 명 출산하기 때문에 출산율이 낮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인간행위학(praxeology)적 관점에서 설명해보기로 한다.
주지하다시피 출산은 출산만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교육ㆍ직장 잡기ㆍ결혼생활(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동양에 비해 서양에서는 부모가 결혼에 덜 신경 쓴다)까지가 모두 출산과 연계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많고 기간도 무척 길다. 우리나라에서는 결혼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요컨대 출산에서부터 결혼까지는 자원배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제간(時際間, intertemporal) 자원배분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각자가 가진 시간선호(時間選好, time preference)라는 것이다. 개인의 시간선호가 소비와 저축(또는 투자)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가 만약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하면, 소비를 많이 하고 저축은 적게 한다. 이러한 상태를 시간선호가 높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그가 현재보다 미래를 선호하면 저축을 많이 하고 소비를 적게 한다. 이러한 상태를 시간선호가 낮다고 한다. 물론 자신의 총화폐소득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소비/저축’ 비율을 유지할 것인지는 구체적인 시간선호율에 의해 결정된다.
개인들의 시간선호의 총합에 의해 총시간시장스케줄들(aggregate time-market schedules)이 결정되고, 그것들이 사회 전체의 저축과 소비 간의 비율, 즉 총사회비율들(aggregate social proportions)을 결정한다. 그 결과 “시간선호스케줄들이 높으면 높을수록 저축 대비 소비의 비율은 커질 것이고, 반면에 시간선호스케줄들이 낮으면 낮을수록 이 비율은 점점 낮아질 것이 명백하다. 그와 동시에 경제에서 높은 시간선호스케줄들은 높은 이자율로 이끌고 낮은 스케줄들은 낮은 이자율로 이끈다는 것을 보았다.”1) 다시 말하면 시간선호가 소비, 저축(투자), 순이자율(pure interest rate)을 동시에 결정한다.2)
불행하게도 개인의 시간선호는 외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소비와 저축의 형태로 외부로 표출되지만 말이다. 문제는 시간선호가 각 개인에 의해 심리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행위학은 시간선호에 대해 궁극적 설명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행위학은 시간선호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 대해 몇 가지 진실을 말할 수 있다.3) 첫째,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개인의 실질소득이 증가하면 그의 시간선호스케줄상에서 시간선호율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 미래를 선호하게 된다는 것으로 사람들의 행위에서 흔히 관찰 수 있는 변화이다. 둘째, 가까운 미래에 종말이 올 것이 확실시 된다면 인간은 미래에 대한 요구를 멈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간선호는 급상승할 것이다. 셋째, 앞의 경우와 반대로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신약이나 방법을 발견한다면 시간선호는 매우 낮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간선호스케줄 자체가 이동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유익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 상당히 진행되면 실질소득의 증가로 시간선호율이 낮아져서 저축이 증가하고 소비가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위기를 맞거나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간의 시간선호율이 급격히 상승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저축이 감소하고 소비가 증가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시간선호스케줄 자체가 이동해 버리는 경우는 앞에서 예측한 방향으로 더 많이 움직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의 변화를 보기로 하자.4) 가계저축률은 1975년 7.9%에서, 1980년대는 10% 중반대로 상승했고, 1988년에는 무려 25.2%로 세계 1위에 올랐다. 1990년대에도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꾸준히 세계 선두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절대적인 수준이 낮아지면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2000년 11.1%, 2006년 5.2%, 2007년 2.9%, 2008년 2.8%였고, 2009년에는 5.1%, 2010년 3.2%가 예상된다. 2010년 3.2%는 일본과 함께 OECD 17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연도별 가계저축률은 시간선호의 변화와 잘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988년까지 실질소득이 증가하면서 시간선호가 낮아졌고 그것은 저축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에 급격한 부동산가격의 상승이 있었지만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시간선호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고, 그 결과 가계저축률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1997년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시간선호는 급격히 상승하여 저축은 극적으로 낮아졌다. 그리고 이번 국제 금융위기로 다시 한번 시간선호가 상승한 결과 저축이 다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5) 6)
2000년을 전후한 저축률의 급격한 하락은 출산율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출산ㆍ육아ㆍ교육ㆍ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높은 저축 또는 저축의 증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연도별 합계출산율을 보면 1970년 4.53명, 1980년 2.83명, 1990년 1.59명, 2000년 1.47명, 2001년 1.30명, 2002년 1.17명, 2003년 1.18명, 2004년 1.15명, 2006년 1.12명, 2007년 1.25명 등이다. 물론 1970년대와 1980년대는 의학의 발달, 피임비용의 하락, 정부의 적극적인 산아제한 정책, 가치체계의 변화 등과 같은 경제 외적인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2000년을 전후하여 출산율이 급격히 낮아지는 것은 경제위기로 인하여 시간선호가 상승한 결과, 저축률이 낮아짐과 동시에 그로 인하여 저축과 함수관계에 있는 미래소비(출산에서 결혼까지 예상되는 비용)가 불투명해지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필자의 주장이 옳다면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출산을 촉진하는 각종 정책보다는 경제위기의 발생을 억제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출산율 하락을 저지하거나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하여 실질소득이 증가하고, 그 결과 시간선호의 하락과 저축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출산율이 상승한다는 보장을 할 수는 없다. 출산의 결정에는 경제 외적인 요소도 큰 몫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선호의 상승과 저축의 하락을 초래하는 경제위기를 막지 못한다면 어떤 출산율 촉진책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여겨진다. 출산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말이다.7)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발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체에서 발생한 경제위기도 겪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8) 그러나 우리나라 자체 발생 위기에 대한 논의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제 우리는 미국발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경제위기의 원인을 찾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경제위기를 해결할 뿐 아니라 저출산 문제도 해결을 위한 일차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전용덕 (대구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ydjeon@dae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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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용덕ㆍ김이석 공역, 『인간, 경제, 국가』, 나남, 2007, p.466 인용 2) 여기에서 순이자율이란 불확실성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의, 현재 화폐에 대한 미래 화폐의 시
간할인율이다. 예를 들어, 현재 100만원의 화폐가 1년 후에 105만원의 화폐를 획득할 것으로 예
상되어, 그 결과 교환된다면 순이자율은 연 5%이다. 물론 불확실성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라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여기에 위험에 대한 대부자의 평가가 추가되고, 화폐의 구매력의 변화 등을
고려한 것이 자연이자율(natural rate of interest)이다. 자연이자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이
자율과 위험 프리미엄에 대한 대부자의 평가이다. 물론 자연이자율은 자유시장 또는 통제받지 않
는(unhampered) 시장에서의 이자율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관찰하는 이자율은 금융시장을 포함
해 시간시장이 정부에 의해 통제받는 시장이 된 경우에 결정되는 이자율로서 흔히 시장이자율이
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정부의 통제하에 있는 시장이자율은 자연이자율보다 낮다.
그리고 두 이자율 간의 격차가 경기변동을 초래할 뿐 아니라 경기변동의 폐해는 두 이자율 간의
격차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전용덕ㆍ김이석 공역,『인간, 경제, 국가』, 나남, 2007, 제6장과
제12장 참조 3) 전게서, pp.512-513 참조 4)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에 대한 연도별 자료는 ‘머니투데이’ 제2433호에서 재인용 5) 1990년대 이후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심각하게 위기를 겪고 있고 이번 금융위기가 상당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와 큰 차이점은 1997년에 우리나라는 상당한 구조조정을 했
고,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 대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아 큰 문제가 없고,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
가 GDP의 200%에 이르렀으며, 이자율을 너무 낮추어 시간선호와의 격차가 더 커졌다는 것 등
이다. 6) 전용덕,『국제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한국경제연구원, 2009 참조 7)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급격한 출산율 저하에는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점이 의미하는 바는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출산장려 정책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서는 정책 이전에 진지한 검토가 필요
하다는 것이다. 8) 이번 미국발 경제위기에는 우리나라 자체에서 발생된 경제위기가 이중적으로 포개져 있다는 주장
에 대해서는, 전용덕,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한국경제”, www.freemarketschool.org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