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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池淡)정홍자
우먼파워 엿보기! - 정홍자 경기도의회 여성특위 위원장 본문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절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992년 평촌 신도시 입주와 동시에 아파트 인근에 자리한 신아화학이라는 화학공장에서 나오는 유해 배출 가스 및 유해환경 공장을 이전 촉구하는 지역운동에서 출발 공장은 이전되고 그 후 지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안양에 뜻있는 여성들이 모여 진정한 여성문제를 고민하고 담아낼 NGO 단체를 조직 안양여성회를 탄생시켰다. 여성농민운동가, 민주화운동경험자, 환경운동가, 문화운동가 등 뜻있는 여성들이 모여 여성의 눈으로 세상 보기를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문제를 의식하게 됐다. 발기인 및 창립준비 운영위원장, 초대 상임대표를 맡았다. 이때부터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성과 지방자치에 여성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고 회원 공부 시작했다. 1995년 지방의회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막연하고 학습되어지지도 않았으며 또한 아이들이 어리고 남편의 반대도 대단했으며 여러 이유에서 출마하지 못하고 공동대표 중에 한분이 출마 했으나 2번이나 실패했다. 2002년도에도 조직 속에서 출마를 권유 받았으나,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중 의회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독일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선진 견학을 하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었지만 우리나라 선거문화, 정치문화 속에 내가 뛰어 들어야 한다는 것에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돈 선거, 조직선거, 상대비방, 공천거래, 등 진난한 선거과정을 통해서 정치에 입문한다는 것 자체가 결단하기 가장 힘든 이유였다. 전에 출마해서 낙선하셨던 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설득으로 출마를 결심했으나 가장 먼저 내 자신을 설득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난 여성들을 위해 무얼 했는지, 지역을 위해 한 일은, 봉사 경력은, 의회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난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자 하는지, 수많은 고민 속에서 1년 가까이 고민했다. 결국, 내가 가진 것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몸이든 생각이든, 지식이든, 돈이든 누군가의 희생으로 오늘의 내가 있으므로 그 누군가를 위해 내가 내 놓을 것이 있다면 기꺼이 내 놓아야 한다. 지금까지 제도권 밖에서 싸우는 일보다 제도권 내에서 대변해 주어야 할 몫이 있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김. 또한 지금까지 못했던 봉사는 앞으로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용기 얻음. 안양 여성회 회원들의 노력과 여성계의 노력, 또한 심재철의원의 여성후보 공천으로 정치 입문하게 됐다. 지금까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점과, 어려움을 극복한 방법은? 정치인으로서 힘들었던 일은 : 민의 기관이며 민주주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의회에서 의장선출 및 위원장, 당대표 선출 등 원구성하는 과정에서 초선이라는 미명아래 철저히 배제되었을 때의 황당했다. 부당함을 제기했다 관리대상자로 따돌림 당했다. 이미 다 짜여진 틀을 70%가 넘는 초선의원들이 목소리 한번 내 보지 못하고 따라가는 것을 보고 방황을 많이했다. 그때 주도적 맴버로 나서서 만든 단체가 경정회 (경기도의정연구회)이며, 현재까지 간사 일을 보고 있다. 또한 여성이 9명이나 되는데 예결위원회에 여성 몫이 없었으며, 강력히 이의제기 후 상반기에는 여성 1명을 배정 받았다. 도정 전반에 여성주의적 시각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여성특별위원회 설치를 하자고 제안했으나 여성 동료들의 미혼적 태도로 1년이 지났다. 2003년 하반기에 여성특위 설치를 위한 제안을 하게 되었으나 남성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운영위원회에 상정도 되어 보지 못하고 표류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남성 동료들에게 남성특위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역차별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2003년 11월에 여성특위를 설치하게 됐다. 상반기가 지나는 지금 되돌아보면 그때그때는 어려움이었고 아픔이었지만 내 나름대로의 소신과 의지가 나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질 수 있어 지금은 당당하고 편안하다. 여성 정책에 관련해서는 남성 동료 의원들이 자문을 구하기도 해서 보람 있다. 어려움은 가끔은 정면 돌파 형이 잘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선거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선거를 뛰기란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첫째는 돈이었다. 어차피 내가 출마 권유를 받은 것 중 하나는 참신성, 신선함, 여성, 시민운동가 등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선거비용을 쓸 만큼 돈이 없었다. 그런데 선거 기간 중 사람이 모였다는 전화가 와서 가면 식당에서는 계산서를 당연하듯이 넘겨주었고, 모임이 있는 곳에는 다과를 원했으며, 자생단체 회의에 가서 인사하면 봉투를 요구했다. 그때마다 그 장소에서는 매끄럽게 웃으면서 거절하고 나왔지만, 돈도 없으면서 출마 했다는 비아냥을 들었을 때는 출마한 내 자신이 정말 싫었다. 그러나 그런 부류는 소수였고 대다수의 주민들 특히, 그동안 어울려 지낸 이웃 형님들이나 주민들은 격려는 물론 김치, 식혜, 홍삼, 발맛사지, 구두 홍보 등 많은 지지를 보내 힘이 났다. 두 번째로는 후보자 미행이었다. 선거운동 마지막 시간에 미행자를 잡아 추궁해 본 결과 상대후보자의 동생과 동생 친구였지만 밤늦게까지 따라 붙는 미행자는 여성 후보를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세 번째로는 상대 후보 진영에서 나온 비방이었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 웃고 넘어 갈 수 있었고 이미 92년도부터 나를 오픈하고 살던 터라 비방이 크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신 할 수 있었던 건 돈 안 드는 선거, 깨끗한 선거를 했다는 평과 대다수 유권자들은 바른 선거를 갈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개인적으로 쓴 선거 비용은 법정 선거 비용을 못 미쳤다. 로고송도 여성단체에서 개사하고 노래방에서 어린이 동요로 녹음해서 비용 들지 않았다. (개인 후보자 로고송은 상당한 지출이 있어야 했음) 남성의원에 비해 여성의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가정과 의원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크다. 보통 때는 남편이나 아이들이 소소한 가정 일을 도와주지만 여성은 집에 들어오면 의원이 아니라 가정주부다. 그러다 보니 잘하거 못하거 살림을 꾸려야 하니 신문 보거나 책을 볼 시간적 여유가 적다. 이건 곧 정보와 실력으로 이다. 슈퍼 우먼 보다 더 센 선파워 슈퍼 우먼이어야 한다. 의회도 남성위주 사회라서 술자리, 축구, 골프 등을 통해 동료끼리 친목을 다지는 것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정보 부족으로 매사에 뒤쳐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의정 활동 중 에피소드 가 있다면? 아이들과 15여년을 생활하다 보니 어른 세계 특히 남성 사회에 익숙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극존칭으로 질의했으며, 의회에서 쓰는 용어가 어색해 평상시 쓰는 용어를 사용하다 모두가 웃은 일이 있었다. 평소에 잘 웃는 버릇이 있어 질의하는 중에 웃다 비디오카메라에 잡힌 적도 있다. 전문위원 등 직원들의 도움으로 질의하는 용어나 공방전 할 때 질의 요령 등을 익혔다. 다음으로는 음담 패설 때문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그야말로 이런 말들을 접할 기회도 없을 뿐 아니라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 흔히 하는 이야기조차 잘 알아듣지 못해서 남들이 다 웃을 때 혼자만 가만히 있어 다른 사람들을 더 웃게 만들었다. 한참은 사람들이 그냥 말을 해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긴장해서 아는 이야기를 해도 모르는 체 하다 웃은 적도 많다. 이 부분은 아직도 익숙지 않다. 여성 정치인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 정치문화가 남성 위주라서 남성성을 강조하지만 여성은 여성 나름대로의 특유한 기질을 정치에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험과 생각과 처한 환경이 다른데 남성 흉내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여성이면서 여성 주의적 시각이 없는 경우는 공부를 더 해야 한다. 조심할 것은 여성 운동하러 간 여성 대표가 아니기 때문에 유권자의 생각이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며, 민원처리는 깔끔하게 처리할 줄 알며, 소외계층을 살필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모든 정치인의 덕목이겠지만 근면, 성실, 정직, 창의력, 추진력, 도덕성, 윤리관, 국가관, 민족관이 바로 서야 하며 세계의 흐름이나 경제, 국방 등에 대해서도 끈임 없이 공부해야 한다. 존경하는 여성이 있다면 누구이며 그 이유는 영국의 대처 수상으로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이 좋아서.... 우리 사회에 있어 가장 심각한 여성문제는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그 대안은? 여성문제를 바로 인식하는 데서 문제는 풀린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가 바뀌려면 남성위주의 정치, 공직 사회에서 여성 문제를 바로 인식해야 한다. 역차별이 아닌 양성 평등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호주제 폐지, 성매매 방지, 보육 문제, 육아 휴가, 여성 고위공직자, 여성지도자, 여성정치인 등 너무나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여성정치인 배출을 위해 남녀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어린 시절 꿈은? 그 꿈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고 있는지? 어린시절 꿈은 선생님이었다. 집안 살림이 넉넉지 못해 정규과정을 이수하지 못해 내가 원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은 될 수 없었다. 30이 훨씬 넘은 나이에 방송통신대학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이 되었다. 유치원과 글쓰기 학원을 운영하면서 남다른 사명감으로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우리의 아이들 가슴에는 어떻게 기억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된 지금은 대학 강당에 서 보는 게 꿈이지만 그 꿈을 이루기는 좀 어렵겠다. 취미는 무엇이며 앞으로의 꿈은 나는 동화책 읽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동화 속에는 어린이들이 느끼는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새삼 많은 것을 깨우쳐 준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거의 책을 못 보는 아쉬움이 있다. 음악 듣기, 영화 보기, 여행하기 등 다 좋아하며 틈틈이 즐긴다. 앞으로의 꿈은: 현재로서는 의정활동을 내실 있게 잘 하는 것이며, 기회가 되면 국회에 진출해서 우리나라의 정치문화를 바꾸는데 한몫을 하고 더불어 여성, 소외계층, 서민들을 위해서 큰 정치를 하고 싶다.
김영기자(.) - 경남여성신문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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