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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池淡)정홍자
보리밭 밟기 본문
보리밭 밟기
정홍자
눈발처럼 시린 찬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겨울 끝자락
홋바지 겹겹이 껴입어도 발가벗은 몸처럼 한기가 휘감도는 지독히 추운 날
아들 손자 며느리 보리밭 밟아 다지러 간다.
눈비 없는 날 골라 보리밭에 나가지만
산등성이 보리밭은 엄동설한 혹한 찬바람 잔치
얼었다 녹았다 부풀어진 땅위를
보리 뿌리 찬바람 들세라 들뜬 뿌리 자근자근 밟지만
어린 아이 발도장이 무슨 소용 있으랴만
온 식구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질한다.
언 손 호호 불고 볼 딱지 에이는 듯 감각 없는데
몇 살 더 먹어 봤자 올망졸망 어린아인 걸
형이라는 이유로 무거운 돌덩이 로라 어깨에 걸고 황소처럼 용을 쓸 때
철부지 동생들은 이리저리 뛰놀며 한 몫 거든다.
할머니의 구수한 얘기에 정신 팔아 보지만
추수할 때 한나절이면 끝나는 한 뼘 밭뙈기가
밟아도 밞아도 끝이 없던 보리밭
하얀 눈서리 머리에 이고
혹한 겨울 견디던 내 고향 보리밭이
반백의 세월 지난 내 모습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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