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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장마

세상과 연애하다 2023. 1. 28. 18:41

그 해 여름 장마

 

정 홍 자

 

 

그 해 여름 장맛비는 덕천마을을 덮쳤다.

철공소에서 일하며 근근이 지하 월세 방을 전전하던

소년의 괴나리봇짐은 대문 밖 길거리로 내동댕이 쳐 졌다.

 

부모님 일찍 여의고

동생 데리고 사는 삶이 고달팠지만

그 해 여름만큼 막막한 적은 없었다.

 

거대한 폭풍우가

홀딱 뒤집어 쓸어버린

무시무시한 그 해 여름 장마

 

소년은 눈물을 삼킬 여력도 없이

앞만 보며

태양보다 더 뜨겁게 살았다.

 

먹먹한 가슴의 흙탕물을

정화하듯

배우고 또 배우며 성인이 되었다.

 

장대비 속에 오갈 데 없던

그 해 여름을 간직한 채

빗방울 수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

품어 준 안양이 고맙다며

가슴에 빛나는 배지를 달았다.

 

하늘이 찢어진 듯

물 폭탄 장맛비가 쏟아지던 날

또다른 소년의 괴나리봇짐이

대문 밖으로 내동댕이 쳐 지는 일이 없게 하자며

눈시울 뜨거운 축배의 잔을 들었다.

 

오늘도

장맛비는 숨 멎은 밤을 깨운다.

 

  -정치에 입문한 후배를 위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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