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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池淡)정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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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당

세상과 연애하다 2023. 1. 28. 18:44

 굿  당

                                                                                                                             정 홍 자

 

 

 

 사업이 어려운 친구가 점집을 가고 싶어 했다. 몇 년 동안 사업이 얼키고 설켜 힘든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동행을 했다.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용하다는 점집이라 예약을 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할머니의 되물림을 받아 아기 신(神)이 내려 점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얼굴도 예쁘고 풋풋한 아가씨였다. 선량하게 생긴 입에서 하는 말마다 ‘귀신이 곡하게 생겼다’는 말이 연신 나오게 맞추었다.

  그녀는 사업이 어려운 이유가 3년 이내에 시댁 쪽 죽은 조상 때문이라며, 축원을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굿을 해야 풀린다고 했다. 친구는 남편이나 집안과는 상의할 수 없다며, 나에게 의논을 했다. 우리는 상담료라고 생각하고 굿을 하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예전에 만신’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이 귀신과 소통하는 얘기이다. 산 자를 위해 죽은 자의 혼을 불러 달래기도 하고, 산 자의 미래를 예측하여 부적으로 화를 면하게 하기도 했다.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였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지만 신과 인간과의 소통을 하는 자가 만신이라 생각했다.

  굿하는 날이 정해졌다. 하필 내 회갑날이었다. 친구는 함께 가 달라고 간청을 했다. 카톨릭을 믿는 나는 점보는 데까지는 몰라도 굿 당까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에둘러 스케줄을 말해도 친구는 거듭 부탁을 했다. 회갑 날인지 알면서도.

‘절박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굿을 하는데 내 입장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겠지’ 입장 바꿔 생각했다.  가족 몰래 하는 굿이라 혼자서 감당하기는 무서울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기도 버거운데 본인은 얼마나 힘이 들까 싶어 하느님께 용서를 빌고 굿 당으로 향했다.

  굿 당은 의왕시 하늘공원 근처였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인데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공동묘지 앞을 지나가려니 등골이 오싹했다. 귀신의 놀이터이니 사람 사는 근처에는 안 되겠지. 긴 호흡을 내쉬며,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 갔다. 정말 차를 돌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굿 당에 들어섰다. 천장은 오방색 천이 화려하게 걸려 있고, 굿을 할 수 있는 방이 여러 개 있었다. 장례식장처럼. 조심스레 들어가니 굿 당에는 친구만 굿을 하고 있었다.

  박수무당이 북을 치고 친구는 그 옆에 앉아 두 손을 빌고 있었다. 굿 하는 사람은 박수무당, 만신, 그리고 2명이 더 있었다. 밖에는 상차람 도우미가 한 사람 더 있었다. 깊은 산 속 큰 굿 당에 8명이 있었다. 으슬으슬했다. 사람들은 친구 옆으로 들어가 같이 빌라고 권했지만, 밖에서 잠시 머뭇머뭇 거렸다. 그러자 친구가 내 손을 끌어 함께 들어갔다.

  굿 당에는 큰 상차림이 호화스러웠다. 나물, 떡, 과일, 음료수, 오방색 천, 모셔올 조상님들의 속옷, 매듭을 묶어 놓은 긴 흰 천. 피리, 심벌즈, 북, 장구와 박수무당 3 사람, 보살 2 사람. 한 쪽 벽면에는 화려한 남녀 한복과 무당모자가 여러 벌 걸려 있었다. 평소에 한복이 참 곱다고 생각했는데, 그 곳에 걸린 옷들을 보면서 ‘한복도 이렇게 가볍고 품격이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굿 당 입구에도 상차림이 있었다. 작은 상차림 앞에는 검정 옷이 놓여 있고, 또 다른 쪽에는 잡은 지 얼마 안 된 돼지가 한 마리 있었다. 불은 밝았지만, 을씨년스러웠다.

 굿은 저녁 7시에서 시작해 12시까지 했다. 여러 만신들이 돌아가면서 했다. 아기 신이 나와 한 바탕 놀았다. 펄쩍펄쩍 뛰면서 뭐라 하는데 앞뒤 말이 맞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음은 박수무당이 장군 신을 불러 놀았다. 친구 공장에 불났다는 얘기를 하는데 친구는 멍하니 두 손만 빌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친구 집에 불이 세 번이 났다. 마지막에는 큰 불이 나서 보험회사와 소송중인데, 그걸 어떻게 알고 불났다고 계속 떠드는 걸까? 불났다고 날뛰는 무당과 멍한 친구를 보면서 웃음이 쿡쿡 나왔다. 아무도 정보를 주지 않았는데 어찌 알고 저럴까? ‘노아의 방주가 보인다’ 고 했다. 친구도 천주교를 다녀서 그런가? 친구 곁에 있어줘 고맙다고 친구 조상이 내게 말했다.

 다음은 조상 신 굿을 했다. 주로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니들이 나왔다. 시댁 조상들은 감사하고 미안하다며, 잘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했다. 친정 어머니가 나왔다. 딸의 고생을 헤아리며 서럽게 울었다. 친구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친정아버지도 잠깐 다녀갔다.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친정어머니는 딸 곁을 지켜 줘 고맙다고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친구 옆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만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안 놓치고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디서 이야기를 끌어올까? 어떻게 지나간 과거를 알까? 분석하느라 바빴다. 마음 한 쪽으로는 친구를 위해 기도했다. 굿하는 곳에서 하느님을 향하자니 방해가 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귀신에게 빌자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갈등 속에 어디에 빌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가 잘 되게 해 달라고 염원을 했다.

  만신들이 하는 말 중에는 맞는 말도 있고, 얼추 비스무리 하게 하는 말도 있었다. 과거는 잘 보이는 모양이다. 김포에 이전한 공장 땅은 전쟁터라 귀신이 많다고 했다. 그럴 수 있다. 지금의 경제가 어려워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도 했다. 경제에 대해 무지할 것 같은 나이든 만신이 그 말을 할 때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우리 경제를 알고 말하는 걸까? 분석하며 들었다.

  다음은 밖에서 하는 굿이었다. 돼지를 재물로 바치는 굿인 모양이다. 무심코 서 있는데 박수무당이 큰 다라에 돼지 피에 온갖 것을 섞더니 입으로 먹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 눈을 감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이 떠올라 구역질이 나고 어지럽고 울렁거렸다. 그 굿판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 굿을 본 후 10여 일을 심하게 앓았다. 친구도 같이 아팠다.

  결국, 굿이란 무당을 매개로 조상과 대화하는 자리였다. 조상을 서운하지 않게 위로하고, 조상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조상이 자손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무당을 통해 이루어졌다. 친구의 조상들은 호의적이라고 한다. 귀신도 착한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다. 곧 일이 풀릴 것이라는 이야기로 굿은 끝났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 하고 서둘러 나오는데도 여전히 등골이 오싹해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생사로 이별해도 조상과의 인연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 살아서 예뻐한 자손은 죽어서도 지켜 주려고 애쓴다는 것, 조상의 은덕으로 자손이 번성한다는 것을 굿을 보며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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